미안합니다. 박사님께서는 해외출장중이십니다. 메모를 남겨 놓으시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으,으, 바,바, 박, 범인, 범인, 으,으,음, 음, 음윽.옆에서 궁금해하는 상훈에게 원장을 넘겨주는 이마무라의 손길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무언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았던 원장을 보러 새벽길을 재촉하여 닛꼬로부터 동경가지 큰 기대를 갖고 왔던 반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힘이 빠진 이유는 처음으로 상훈에게 형사반장으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간 데서 오는 허망함이 더 컸던 것이었다.모처럼 깊은 잠에 빠진 상훈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한시였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흥분된 목소리는 이마무라 주임의 것이었다. 보험수혜자로 되어 있는 아사꼬의 주민등록지를 추적하다보니 그녀를 기억하는 한 노파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 노파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고생했다며 이마무라는 너스레를 떨었다.전화를 끊고 집에 돌아온 상훈은 베란다의 의자에 앉았다. 시베리아로 간다는 기분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스미다가와 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바라보며 상훈은 일본에 와서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하나하나 정리를 해나갔다. 사건과 더불어 그때 그때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오버랩되어 넘어가는 얼굴 중에 조용히 떠올라서는 가슴 한켠에 자리를 잡는 얼굴이 있었다.상훈과 하야꼬는 야마자끼의 옆에 한동안 서 있었다. 두 사람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넬 여유가 없었다. 야마자끼는 고개를 들다가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천천히 일어섰다.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격한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두 젊은이는 당황하여 노인을 위로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좀체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였으므로 두 사람은 의논하더니 노인의 옷깃에서 마이크 핀을 뺐다.“수혜자는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저는 잘 몰라요. 다만 무엇인가를 거창하게 출발한다는 것이 싫었어요.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다른 무엇보다도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식이 저를 지배하는 것이 싫었던 거죠
전엔 정말 미안합니다. 예기치 않게 늦어져 그냥 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바로 그렇습니다.네.박 선생, 그 종이를 갖고 계시지요? 일단 그걸 돌려주시오.박 선생, 지금 평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소.한국이나 일본에서 이렇게 펼쳐진 대지를 못한 이유도 있지만 자신에게 시베리아라는 이름이 주는 시원함은 그냥 펼쳐진 대지를 보는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비록 한반도라는 좁은 곳에 오랜 동안 살아왔지만 어쩌면 한민족의 마음의 고향은 시베리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인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고향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이 시베리아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그렇다면상훈은 옛사람들이 이제까지 쓸모없는 유학에 빠져 몇 자리 안되는 권좌를 놓고 싸우기만 해온 것으로 여겨왔었다. 그들의 세계가 이토록이나 보편성을 통찰하고 세상의 근본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문체 또한 예술적인 향기가 드높았다. 그 훌륭한 예술적 구도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돈된 편안함과 더불어 절제된 지적 세계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도록 하고 있었다.“그렇다면 그 사람도 역시 알 수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상훈도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잡아, 저 들 잡아.네.조 전무가 가리키는 부분에는 행동강령이라는 소제목 밑에 이런 내용의 컴퓨터 인쇄가 되어 있었다.일전에 전화했던 동경대학의 박상훈입니다. 혹시 70년 10월 혹은 그 이후의 어느 기간 중에 우에노 에이지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그러나 인간은 현실의 필요와 욕심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 않소?야마자끼는 동요하는 듯했다.과원 육군 공병 대위, 정7위 고지마 고강(소도호간)55. 정죄만찬장으로요?저게 무슨 글자입니까?뭔가 얼핏 생각날 것 같았지만 머리에 뚜렸이 잡히는 게 없어 상훈은 이 교수의 낙서 자국을 몇 번이고 훑었다.일본혼을 자극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테러 활용.도